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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ura e della Scrittura, del maestro e del confessore
ecc. L’abuso del denaro, del diletto del senso, della ten-
denza all’onore; l’abuso della mente, delle passioni,
della libertà, della famiglia, della posizione sociale ecc.;
l’abuso della Presenza Reale, delle occasioni dei meriti,
di istruzione religiosa, della grazia, ecc.
3. Le creature dateci pel bene, possono tutte divenire
occasione di abusi specialmente dopo il peccato originale:
per la rivolta da esso portata delle cose e del senso contro
la ragione, di questa contro Dio, del tempo contro l’eter-
nità. Per questo dobbiamo camminare sull’esempio di
Gesù Cristo, che ne fece uso rettissimo, ⏐ ci ammaestrò a
questo con la parola; ha guadagnato la grazia per noi.
* * *
1. Essere superiori 20 non servi ad esse, con la ragio-
ne, con la fede, con la grazia; secondo la volontà di Dio.
Essere indifferenti ad esse quando sono indifferenti
di lor natura: onore, sanità, ingegno, vita, uffizi ecc.
San Paolo: scio et humiliari, scio et abundare; et satiari
et esurire; et abundare et penuriam pati.21
––––––––––
20 I concetti riguardanti l’uso delle creature provengono dagli Esercizi
spirituali di S. Ignazio: “Principio e fondamento” – «L’uomo è creato per
lodare, riverire e servire Dio nostro Signore, e, mediante questo, salvare
l’anima sua; e le altre cose sulla faccia della terra sono create per l’uomo e
per aiutarlo a conseguire il fine per cui è creato. Donde segue che l’uomo
tanto deve usarle, quanto lo aiutano per il suo fine; e tanto deve astenerse-
ne, quanto gli sono di ostacolo verso questo fine. Perciò è necessario farci
indifferenti a tutte le cose create, finché è concesso alla libertà del nostro
libero arbitrio, e non è ad essa proibito; in modo che non vogliamo, da
parte nostra, salute piuttosto che malattia, ricchezza piuttosto che povertà,
onore piuttosto che disonore, vita lunga piuttosto che breve, e così in tutto
il resto; desiderando ed eleggendo unicamente quello che meglio ci con-
duce al fine per cui siamo creati» (n. 23).
21 La frase completa è: «Scio et humiliari, scio et abundare ubique et
in omnibus institutus sum: et satiari, et esurire, et abundare, et penuriam
pati» (Fil 4,12). La traduzione completa è: «Ho imparato a essere povero e
ho imparato a essere ricco; sono iniziato a tutto, in ogni maniera: alla sa-
zietà e alla fame, all’abbondanza e all’indigenza».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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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그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각적으로 호소하는 것들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이성과 신앙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생명의 화관을 약속받은 시련을 견뎌낸 이
들은 행복합니다.”(beatus vir qui cum probatus fuerit accipiet coronam
vitæ)40
죽 음
1. 죽음은 시험과 충실의 종착점이다. “잘했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euge serve bone et fidelis)42 “시련을 견뎌내어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행복합니다.”(Beatus vir qui suffert tentationem, quoniam cum
probatus fuerit…)43 좋은 밀… 가라지…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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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야고 1,12. 성경 전문은 다음과 같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
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Beatus vir qui suffert tentationem,
quoniam cum probatus fuerit, accipiet coronam vitæ)
41. 집회 41,3의 말씀을 암시한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약간 다르고 다른 의미를
지닌다. “아 죽음아, 너의 판결이 궁핍한 인간에게 얼마나 좋은가!”(O mors,
bonum est judicium tuum homini indigenti: 우리말 성경은 집회 41,2로 성경
전문은 다음과 같다. “아 죽음아, 너의 판결이 궁핍하고 기력이 쇠잔하며 나
이를 많이 먹고 만사에 걱정이 많은 인간에게, 반항적이고 참을성을 잃은 자
에게 얼마나 좋은가!”-역주)
42. 마태 25,23.
43. 야고 1,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
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
을 것입니다.” - 인용 부분에서는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accipiet
coronam vitæ)라는 문장의 마지막 부분이 빠져 있다.
44. 마태 13,24-30.36-43 참조.
“오, 죽음이여. 너의 충고는 유익하다.”
(O mors, bonum est consilium tuum)41
정화의 길 via purgativa그263
2. 죽음은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마치 밤
도둑처럼.”(sicut fur in nocte)45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estote
parati)46 죽음의 분명한 의미는 주님을 위한 사랑을 살고, 천국 본
향,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대한 직관, 상급을 열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3. 죽음은 인생의 논리적 귀결이다. 결론은 전제에 달려 있으
나, 전제는 결론을 자유에 맡기지 않는다. 잘 산 사람은 잘 죽을
것이고, 뿌린 사람은 거둘 것이다. 하느님은 성실하시다! 그러므
로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 행하지 않은 선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Tempus non erit
amplius)47
세상에는 하느님에 대한 명제가 있다. “나는 선하다.”(Ego
bonus)48 여기에 죄인을 맞아들이기 위해 늘 기다리고 계신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이 있다. 우리의 공로 없이 우리를 창조하고 구원하
셨듯이 매순간, 또 마지막 순간에도 회개하는 우리를 맞아주신다.
두 가지 죽음
1. 죄인의 죽음과 의인의 죽음. “당신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
31
45. 1테살 5,2.
46. 마태 24,44.
47. 묵시 10,6: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의미는 문장에서 의미하는 뜻 그
대로이나 번역에 따라서 의미가 조금 다를 수 있다. 곧 “더는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CEI: 이탈리아 주교회의 성경) “더는 지체할 여유가 없다.”(이탈리
아 성 바오로 출판사의 최신 번역본)
48. 마태 20,15 참조: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An oculus tuus
nequam est quia ego bonus s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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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읽기, 스승과 고해사제 등
3. 하느님께 주어진 피조물은 모두 원죄 이후에 특별히 남용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는 그로 인해 물건과 감각이 이성에, 이성은 하느님께, 시간은 영원에 반항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피조물을 올바르게 사용하셨고, 말씀으로 이를 가르치셨으며, 우리를 위해 은총을 이기셨다는 예를 따라 나아가야 한다.
1. 피조물에 대해 주님의 뜜에 따라 이성, 믿음, 은총으로 그들을 종으로 삼지 말고, 본질적으로 무관심한 것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명예, 건강, 재능, 생명, 직책 등이다. 바울 사도는 말했다. "난 빈궁할 줄 아노라, 풍요로울 줄 아노라, 포만할 줄 아노라, 굶을 줄 아노라, 풍요로울 줄 아노라, 궁핍을 당할 줄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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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피조물 사용에 관한 개념은 성이냐즈의 영적 연습에서 유래한다. "원리와 기초"에서 "인간은 찬미하고 숭배하며, 주님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창조되었으며, 이를 통해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 땅 위의 다른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그가 창조된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도록 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만큼 피조물을 사용해야 하며, 장애가 되는 만큼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모든 피조물에 대해 중립적이 되어야 하며, 건강보다 병, 부유보다 빈곤, 명예보다 수치, 장수보다 단명 등을 원하지 않아야 한다. 창조된 목적을 이루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을 갈망하고 선택해야 한다." (23항)
21. 전체 문장은 "난 빈궁할 줄 아노라, 풍요로울 줄 아노라, 어디서나 모든 일에 익숙해졌노라: 포만할 줄 아노라, 굶을 줄 아노라, 풍요로울 줄 아노라, 궁핍을 당할 줄 아노라." (필 4,12) 완전한 번역은 "난 빈궁할 줄 아노라, 풍요로울 줄 아노라, 어디서나 모든 일에 익숙해졌노라: 포만할 줄 아노라, 굶을 줄 아노라, 풍요로울 줄 아노라, 궁핍을 당할 줄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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